니르나이스

2013. 11. 24. 16:16 from 0.1



  인과의 순간에 인간의 배신이 있었다.


 길고 무거운 비늘덩어리가 무리 속으로 파고들어 대군을 둘로 나누었을 때 가벼워진 것은 요정들의 목숨만이 아니었다. 더없이 가벼워진 동부인들의 죄의식이 그들의 목과 심장을 더 이상 얽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고 요정들의 검이며 투구도, 찬란한 군기도 떨어졌다. 울팡이 돌아섰다. 그들이 가고 그들이 왔다. 울도르의 패는 머리가 거꾸러져도 더러운 손을 휘둘렀다.


 세 방향의 칼을 견디지 못하고 요정들의 군대가 갈라졌다. 페아노르의 아들들, 일곱 피붙이가 서로를 붙잡아 모였다. 더도 덜도 없이 꼭 일곱이었다. 마에드로스가 서쪽을 돌아보았다. 마글로르가 제 형을 보았다. 그러나 패잔병을 이끌고, 그들은 다만 일곱 형제를 모아 달아날 뿐이었다. 이름만은 여직 형형한 페아노르의 군대는 동부로 뛰었다.


 돌메드산에, 곧 무너질 병영이 섰다. 그저 모든 침수 속에 생존이라는 흙으로 쌓은 성곽이었다. 안에서, 일곱이 둥글게 늘어 서로를 마주했다. 카란시르만이 피를 닦았다. 마글로르가 그에게 물 묻은 헝겊을 주었다. 철에 피를 묻힌 채로, 아무도 말을 않고 기다렸다. 왼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마에드로스가 다시 형제를 세었다. …쿠루핀, 암로드, 암라스…. 다시, 하나, 둘…여섯, 일곱…다시 하나. 일곱에 이르는 완벽한 숫자를 반복했다. 마글로르는 형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형제는 모두 여기 있다. 그는 반복하고 있다. 몇번째 셈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형제는 모두 여기 있다. 그는 불안한 것이었다.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 일곱을 세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불안했다. 일곱을 일흔일곱번 세고도 불안한 것은 그가 일곱이 아닌 그 다음, 혹은 그 뒤, 혹은 그 앞이 불안함이었다. 마글로르는 형을 보던 눈을 돌려 막사의 출입구를 향했다. 그도 말발굽소리, 아니면 절걱이는 소리를 기다렸다.


 밖에서 죽은 탄성이 났다. 지친 말발굽 소리, 군화 끄는 소리가 나며 병사들이 몰렸다. 켈레고름이 막사 문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내밀자 곧 병사 하나가 막사로 들었다. 그가 보고했다. 난쟁이들의 왕 아자그할이 전사했고, 그들은 장례 행렬을 이루어 떠났습니다. 투르곤 왕의 군대는 그들의 도시로 빠져나갔고 도르로민의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지 않고 남았습니다…. 간략하지만 분명했다. 병사가 입을 다물었다. 쿠루핀이 그를 치하하고 물러갈 것을 이르려 했다. 마에드로스가 병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을 본 병사가 멎었다. 형의 어깨를 누르고 마글로르가 대신 말했다. 빠뜨린 것이 있지 않느냐, 하나…. 병사는 마글로르를 쳐다보고 망설였지만 마에드로스가 먼저 물었다. 어깨를 짚은 동생의 손을 물리고 병사에게 물었다. 핀곤 대왕은…어찌되셨느냐…. 병사는 입을 떼기 전에 침을 삼켰다. 물어보는 마에드로스의 눈이 오직 저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의 위대한 군주가 그곳에 오롯이 혼자여서, 그는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층이 겹친 그 눈에 답의 재촉은 없었다.

  「핀곤 대왕께서는…고스모그와 대적하시다가….」

전사하셨습니다. 모두 다시 입을 다물었다. 병사는 마에드로스를 보았으나 그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마글로르가 급히 밀어 병사가 막사 밖으로 물러났다. 병사가 나가고 문이 닫힌 막사 내부는 달랐다. 암라스가 암로드의 손을 잡고 귀를 세웠다. 중앙에 섰던 마글로르가 형제들을 해산시키려 했을 때, 돌연 마에드로스가 배를 움켜잡고 상체를 숙였다. 움직임이 고통스러웠다. 목은 뻗대어, 그 곁에 있던 카란시르는 제 형의 목줄기에서, 이마에서, 드러난 오른손의 상처에서 땀이 미끄러지는 것을 보았다. 진실된 통증이었다. 입을 뻐끔거리며 후들대던 마에드로스가 앞으로 고꾸라져 의자에서 떨어졌다. 비로소 비명이 터졌다. 부들부들 떨면서 하나 없는 양손으로 배를 움키고 마에드로스가 신음했다. 그 울음소리가 어딘가 잡은 무게가 전혀 없이, 멋대로 지르고 갈라져, 괴상하고 짐승 같았다. 마글로르가 서둘러 동생들을 물렸다. 마글로르는 마에드로스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그 곁에,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에드로스가 고꾸라진 채로 복통에 앓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마글로르는 형을 감싸안지도 못하고, 그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가, 다시 하얗게 질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곁에, 바닥에 앉아있던 마글로르도 곧 막사를 나갔다.


 다음날에야 마글로르는 막사에 다시 들어서 산 송장의 차마 마른 얼굴을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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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은 발리노르에서 다시 만나는 거지만 마에드로스의 '핀곤이 죽었다'가 한 번 써보고 싶어서...

마에드로스 본인은 발리노르에 다시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실제로 가는 것도 좀 애매해서.


좀 더 나중에 마글로르가 핀곤을 위한 애가를 만들어서 마에드로스 옆에서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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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숲울 :